작업실, 구경
이 책이 나왔을 때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다. 예술가들의 작업실은 어떨까?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 작업할까?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렇지 못하기에 이런 책은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예전에 나왔던 작가의 방을 들여다보는 기획도 참 좋았는데 요즘은 그런 책이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두툼한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빌려왔다. 읽으면서 입을 다물기 힘들 때가 많았지만 아쉬움도 컸다. 그들은 이미 대가의 길에 접어들었기 때문일까. 규모도 으리으리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가난한 예술인”은 찾기 어려웠다. 교외라고는 하지만 큰 평수의 작업실에 함께 딸려 있는 아름다운 집. 물론 그 예술가가 직접 짓거나 디자인하거나 꾸몄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웠겠지만 소시민의 입장에서 그들의 작업실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만한 위치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전과 노력을 했을까 싶다. 이 책에서는 아쉽게도 그 부분이 주마간산격으로 휙 지나가고 만다. 결과물이 도드라지다보니 나 같은 사람에게는 좀 그렇게 비쳤나보다. 게다가 잡지에 실렸던 꼭지들을 모아서 냈을 것 같은데 그들의 작업실을 깊이 들여다보기엔 책 내용이 좀 부족했다. 25명이나 되는 예술가들을 들여다보려니 깊이가 덜했달까.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은 얻지 못한채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각 분야의 대가들인데 나는 처음 뵙는 분들도 꽤 많았다. 제일 처음 소개된 미디어 아티스트 이용백의 작품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피에타라는 작품을 거푸집을 이용한 작품으로 재탄생하였는데 작품도 멋졌지만 해석도 참 좋았다. 조각을 만들기 위한 틀인 거푸집이 성모마리아가 되고 그 거푸집에서 나온 조각이 예수가 된다. 거푸집이 자신의 틀에서 나온 조각을 끌어안고 슬퍼하기도, 거푸집에서 나온 조각이 거푸집을 공격하기도, 거푸집에서 나온 조각이 죽어 있기도 한다. 누가 뭐라 해도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은 자신의 죽음이 아닐까. 꿈을 포기하고 습관과 관성에 의해 산다면 이 역시 죽음이 아닐까. 나의 시신을 안고 있는 또 다른 나. ‘현대인의 자기 연민과 증오, 자기 죽음’을 표현했다는 이 작품은 들여다볼수록 슬프다. 커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 백순실도 눈에 뜨였다.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로 그림을 그리다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실제 원두를 직접 고르고 로스팅을 하는 커피전문가이기도 하다는 그녀. 헤이리에 미술관과 카페를 가지고 있다는데 외관을 보니 작년 방문 때 스쳐지나간 곳이다. 정말 꼭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헤이리이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궁중채화 장인 황수로 여사의 작품도 굉장히 멋졌다. UN본부 중앙홀에 전시되었었다는 화준(花樽)은 꽃나무를 큰 화병에 옮긴 것으로 조선시대 나라의 잔치가 열릴 때 임금의 자리 좌우에 두던 장식이란다. 용무늬가 그려진 대형 화병에 쌀을 채운 후 3미터가 넘는 크기의 복숭아 나무를 고정하고 나뭇가지마다 비단으로 만든 꽃을 붙여 완성한 것. 여기에 꽃과 봉오리는 무려 2천여 송이가 소요된다고 하니 그 노력이 대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이강소 화가가 10여 년 전 목수와 함께 지은 방 한 칸짜리 한옥이었다. 이불 한 채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들이지 않았다는 소박하고 청빈한 공간. 단 한권의 책만을 들고 앉아 책을 읽는 그의 모습에서 세한도의 느낌이 든 것은 나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작가들의 치열한 창작흔적을 들여다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그들의 작업 공간만을 볼 수밖에 없었던 책, <작업실, 구경: 엿보고 싶은 작가들의 25개 공간>이다.
예술가의 방으로 초대합니다!엿보고 싶고 따라하고 싶은 작가들의 아지트누구보다 아름다운 것 에 몰두하고 새로운 것 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은 자신의 내밀한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꾸며놓았을까? 예술가의 방 이나 작업실 은 그 단어만으로도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공간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예술가의 공간은 그 어떤 곳보다 동경과 기대의 대상이 된다. 작업실, 구경 에는 이처럼 엿보고 싶고 따라하고 싶은 스물다섯 작가들의 공간이 소개돼 있다. 다양한 예술가들의 살롱으로 살아 숨 쉬는 사진가 허명욱의 세컨드하우스, 업계에선 독보적인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정민의 주방, 옷을 넘어서 라이프스타일을 둘러싼 문화, 패션, 디자인 프로덕트, 패브릭 등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의 멀티 컨셉트 숍 등. 책에 실린 스물다섯 개의 공간에는 일생의 반을 궁중채화 복원에 전념해 온 장인의 연구실부터,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미술가의 아틀리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매력적인 젊은 가구 디자이너의 공방에 이르기까지 성격도 취향도 다양한 곳들이 포함돼 있다.
예술가의 방으로 초대합니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용백
잘 놀고 제대로 일하고 싶은 이용백의 심플 라이프
판화가 구자현
지난한 노동 끝에 순백의 평면을 얻다
사진가 허명욱
세월의 흔적을 미화하는 독창적인 아틀리에
조각가 이재효
조각가의 손을 기다리는 돌과 나무 그리고 잎사귀
가구 디자이너 한정현
행복을 모으는 사진첩, 이야기가 있는 가구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정민
프로페셔널 주방에서 스타일이 요리된다
도예가 고덕우
투박해서 편안하고 그래서 더 아름답다
문인화가 구지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이화동 소석화실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
진지와 유쾌가 공존하는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인
화가 백순실
커피향 짙은 캔버스 위에 자연의 숨결을 노래하다
그래픽 디자이너 조현
타이포그래피로 이어가는 세상과의 소통
일러스트레이터 이철민
취향이 묻어나는 아지트. 작업실은 스케치북이다
궁중채화 장인 황수로
화려하게, 내밀하게 꽃으로 피어나는 비단 장식
가구 디자이너 유정민
담백하면서 모던하게, 나무의 온기를 지닌 디자인
작가 이상일
외암리 84번지에 펼쳐지는 아티스트의 새로운 무대
도예가 신상호
예술혼을 불어넣은 흙과 색의 제국
인테리어 디자이너 홍희수
디자인과 컬러가 교감하는 감각적인 스튜디오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우진
생각이 소요하는 공간, 자유로운 아틀리에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재화
창조와 휴식이 함께하는 디자이너의 홈 오피스
화가 장원실
축사를 개조해 만든 작업실, 마른 자리
도예가 이헌정
직관을 신봉하는 작업, 흙의 본성이 드러나도록
화가 이강소
거칠고 자유로운 붓놀림, 그 뒤에 그려지는 힘찬 평화
화가 김쾌민
잡동사니와 상념의 집합소, 자극을 주는 작업실
화가 서용
시대를 뛰어넘어 흙벽에 새긴 영원한 여유
조각가 안재복
쉴 곳을 선사하는 조각, 내 삶이 예술과 같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