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첫인상이 예쁘고 간직하고 싶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읽으려니 내용과는 조금 어울림이 부자연스러운 듯해 오히려 아쉽다. 신경림 시인이 뽑은 워낙 좋은 글들이라 기대감이 있었는데 글 하나하나는 참 좋았다. 소문으로만 들은 김유정의 수필 같은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영광이다. 그러나 신경림 시인이 이 글들을 만났을 때의 감동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지는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너무 좋은, 감동의 기억이 함께 있는 글들을 한자리에 모았는데 시인이 느끼고 마음 속에서 숙성시킨 시간만큼의 감동을 고스란히 느끼지는 못한 것 같다. 시간을 두고 다시 보면 다를 것 같다.
60년 시인의 길을 동행했던 가슴 뭉클한 수필들
시인은 그 글들을 잃어버렸다.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렸기에 잊어버릴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 글들을 읽었을 때의 감흥은 사라지지 않고 새록새록 떠올랐다. 하지만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처음 만났던 때처럼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치리라. 그러면 오래전의 친구를 길에서 만난 듯 반가우리라.
그 글들은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은행에서 아무렇게나 뽑아든 잡지에서 만났고, 잠시 빌려 읽은 책에서 만났고, 시험공부를 하러 간 도서관에서 딴청을 피우던 중에 만났다. 이상하게도 그 글들을 ‘소유’하기란 쉽지 않았다. 집 안 서가의 어디에도 그 글들은 없다.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것이 수필이라는데, 그래서일까? 그 자유로운 마음의 흔적들은 손에 쥐어지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것은 확신하기 힘든 제목과 지은이의 이름, 그리고 무언가 물컹하고 뭉클했던 감각뿐.
신경림 시인의 이야기다. 시인의 나이로만 환갑을 훌쩍 넘긴 세월 동안 많은 책을 만났고 많은 글을 읽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세파에 시달리며 많은 것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그 글들을 읽었을 때의 따뜻하고 시큰한 느낌은 마치 보물창고처럼 기억 속에 오롯이 자리해왔다. 뭉클 은 신경림 시인이 오랫동안 마음의 책장 속에 간직해두었던 수필들을 엮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을 누가 엮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60년 넘게 시를 품고 살아온 사람이 건네는 글이라면, 그 마음과 함께 읽히지 않을까.
신경림 이 책을 엮고 나서
1부 품속에서 꺼낸 삶의 한 잎
01 김유정 필승 전前
02 박형준 가을의 저쪽
03 손석희 햇빛에 대한 기억
04 이해인 신발을 신는 것은
05 박민규 우리는 누구나 한 장의 연탄이다
06 이상 여상女像
07 정지용 더 좋은 데 가서
08 법정 잊을 수 없는 사람
09 이어령 골무
10 노자영 사랑하는 사람에게
11 신영복 나막신에 우산 한 자루?계수님께
12 박용구 연가戀歌
13 권구현 팔려가는 개
2부 길 위에서 만난 꽃송이
14 김기림 길
15 김수환 어머니, 우리 어머니
16 노천명 설야 산책
17 김용택 아, 그리운 집, 그 집
18 채만식 눈 내리는 황혼
19 이광수 꾀꼬리 소리
20 류시화 이상하다, 내 삶을 바라보는 것은
21 강경애 꽃송이 같은 첫눈
22 방정환 4월에 피는 꽃 물망초 이야기
23 최서해 가을의 마음
24 박목월 평생을 나는 서서 살았다
25 김남천 귀로歸路?내 마음의 가을
26 임화 춘래불사춘
3부 사람, 늘 그리운 나무
27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28 권정생 목생 형님
29 이중섭 서로에게 불행한 결과를 낳을 따름이오
30 나혜석 여인 독거기獨居記
31 김소진 그리운 동방에 가고 싶어라?달원형에게
32 정채봉 스무 살 어머니 1
33 박인환 사랑하는 나의 정숙이에게
34 최인호 나의 소중한 금생今生
35 문익환 마음의 안식처, 보이지 않는 기둥?37년을 하루같이 살아온 당신에게
36 박완서 친절한 사람과의 소통
37 정진석 보미사 꼬마와 신부님?어린이날에 생각나는 일
38 유홍준 코스모스를 생각한다
39 이효석 한식일
40 장영희 루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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