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중순에 조르주 페렉의 『인생 사용법』을 다 읽었다. 원래는 하루에 한 챕터씩 모두 99챕터를 매일 거르지 않고 읽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못 읽는 날도, 읽기를 미루는 날도 있다 보니 몰아서 읽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럴수록 조바심이 나서 서둘러 읽으려 했다. 페렉은 『인생 사용법』을 침대에 엎드려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염두에 두며 썼다고 했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리 만만치 않다. 그가 사물의 세계를 편집증적으로 파고들 때 이를 제대로 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사물의 세계는 곧 상품의 세계이기도 하다. 페렉은 마르크스에 이어 상품의 세계로 내려간 작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사물에서 삶을, 이야기를 끄집어 내고 다시 인물과 사물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이야기로 빠져나가는 이 후기구조주의적 소설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체스의 행마법, 그중에서도 나이트의 이동을 소설에 적용해 소설 속 공간의 배치와 서술 순서에 일관성과 변칙성을 함께 부여하는 그 기술에 놀라게 된다. 페렉은 지독한 인용의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책의 말미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애거사 크리스티와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그문트 프로이트,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 토마스 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허먼 멜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마르셀 프루스트, 프랑수아 라블레, 스탕달, 쥘 베른(… 그 밖에도 많은 작가들이 있다)의 글을 차용하고 변형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이탈로 칼비노, 해리 매튜스, 레몽 크노, 자크 루보,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울리포(잠재문학작업실) 그룹의 책도 가미했다. 인용과 모방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창조를 갱신하려는 불가능한 시도에 경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칠백 쪽이 넘는 분량이 독자를 압도하지만, 조금 과장하자면 『인생 사용법』이야말로 지적 모험 이라는 말에 잘 어울리는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2015년 상반기의 책으로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다뉴브』가 있었다면, 비록 출간된 지 3년이 지난 책이지만 지난해 하반기의 책으로 조르주 페렉의 『인생 사용법』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도 적게나마 책을 읽으며 보냈다. 새해에는 더욱 좋은 책을 좀 더 많이 읽으며 살고 싶다.
조르주 페렉은 20세기 후반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온갖 문학적 실험에 몸을 던진 보기 드문 집념의 작가다. 45세 기관지암으로 죽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펼친 기간은 15년 남짓이지만, 소설과 시, 희곡, 시나리오, 에세이, 미술평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인 쓰기를 했다. 작가, 화가, 수학자, 과학자 등 여러 집단으로 구성된 실험문학그룹 울리포Oulipo의 자장 아래, 반복된 형식을 끔찍하게 싫어해 매번 새로운 글쓰기에 도전해 다가올 시대를 예비했던 페렉. 그의 문학세계가 지닌 다양한 스펙트럼을 살필 수 있는 [조르주 페렉 선집]의 일곱 작품ㅡ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인생사용법 공간의 종류들 생각하기/분류하기 나는 기억한다 잠자는 남자 겨울여행 & 어제여행 ㅡ은 문학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새로운 지평을 확인하고 음미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인생사용법 은 다채롭고 흥미롭기 그지없는 방대한 분량의 작품이다. 1978년 메디치 상을 수상한 이 작품으로 페렉은 문학사에 남을 대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울리포의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온갖 인간 군상을 융단의 그림처럼 치밀하고 정교하게 직조한다. 작가적 역량을 한데 모은 인생사용법 은 누구도 다시 쓰기 어려운 독특한 개성의 작품이자 앞으로 출간될 그의 여타 작품에 풍요로운 그늘을 드리운 페렉 문학의 큰 봉우리라 할 수 있다.
조르주 페렉 선집을 펴내며 _5
머리말 19
제1부
제1장ㆍ계단 1
제2장ㆍ보몽 1
제3장ㆍ4층 오른쪽 아파트 1
제4장ㆍ마르키조 1
제5장ㆍ풀로 1
제6장ㆍ브레델(다락방 1)
제7장ㆍ모렐레(다락방 2)
제8장ㆍ윙클레 1
제9장ㆍ니에토와 로헤르스(다락방 3)
제10장ㆍ제인 서턴(다락방 4)
제11장ㆍ위팅 1
제12장ㆍ레올 1
제13장ㆍ로르샤슈 1
제14장ㆍ댕트빌 1
제15장ㆍ스모프(다락방 5)
제16장ㆍ셀리아 크레스피(다락방 6)
제17장ㆍ계단 2
제18장ㆍ로르샤슈 2
제19장ㆍ알타몽 1
제20장ㆍ모로 1
제21장ㆍ기관실에서 1
제2부
제22장ㆍ로비 1
제23장ㆍ모로 2
제24장ㆍ마르시아 1
제25장ㆍ알타몽 2
제26장ㆍ바틀부스 1
제27장ㆍ로르샤슈 3
제28장ㆍ계단 3
제29장ㆍ4층 오른쪽 아파트 2
제30장ㆍ마르키조 2
제31장ㆍ보몽 3
제32장ㆍ마르시아 2
제33장ㆍ지하 창고 1
제34장ㆍ계단 4
제35장ㆍ수위실
제36장ㆍ계단 5
제37장ㆍ루베 1
제38장ㆍ엘리베이터 기계실 1
제39장ㆍ마르시아 3
제40장ㆍ보몽 4
제41장ㆍ마르키조 3
제42장ㆍ계단 6
제43장ㆍ풀로 2
제44장ㆍ윙클레 2
제45장ㆍ플라세르 1
제3부
제46장ㆍ제롬 씨(다락방 7)
제47장ㆍ댕트빌 2
제48장ㆍ알뱅 부인(다락방 8)
제49장ㆍ계단 7
제50장ㆍ풀로 3
제51장ㆍ발렌(다락방 9)
제52장ㆍ플라세르 2
제53장ㆍ윙클레 3
제54장ㆍ플라세르 3
제55장ㆍ프레넬(다락방 10)
제56장ㆍ계단 8
제57장ㆍ오를로브스카 부인(다락방 11)
제58장ㆍ그라티올레 1
제59장ㆍ위팅 2
제60장ㆍ시노크 1
제61장ㆍ베르제 1
제62장ㆍ알타몽 3
제63장ㆍ배달 문 입구
제64장ㆍ기관실에서 2
제4부
제65장ㆍ모로 3
제66장ㆍ마르시아 4
제67장ㆍ지하 창고 2
제68장ㆍ계단 9
제69장ㆍ알타몽 4
제70장ㆍ바틀부스 2
제71장ㆍ모로 4
제72장ㆍ지하 창고 3
제73장ㆍ마르시아 5
제74장ㆍ엘리베이터 기계실 2
제75장ㆍ마르시아 6
제76장ㆍ지하 창고 4
제77장ㆍ루베 2
제78장ㆍ계단 10
제79장ㆍ계단 11
제80장ㆍ바틀부스 3
제81장ㆍ로르샤슈 4
제82장ㆍ그라티올레 2
제83장ㆍ위팅 3
제5부
제84장ㆍ시노크 2
제85장ㆍ베르제 2
제86장ㆍ로르샤슈 5
제87장ㆍ바틀부스 4
제88장ㆍ알타몽 5
제89장ㆍ모로 5
제90장ㆍ로비 2
제91장ㆍ지하 창고
제92장ㆍ루베 3
제6부
제93장ㆍ4층 오른쪽 아파트 3
제94장ㆍ계단 12
제95장ㆍ로르샤슈 6
제96장ㆍ댕트빌 3
제97장ㆍ위팅 4
제98장ㆍ레올 2
제99장ㆍ바틀부스 5
에필로그
시몽크뤼벨리에 거리 11번지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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