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말하기 뭣하지만, 이 책이 별로 맘에 들지는 않는다. 저자는 일단 빅토리아시대, 그리고 볼셰비즘의 시대의 일군의 정치인 및 문필가, 그리고 학자들에 대해 불만과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수용하려 했던 과학개념의 한계를 명징하게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들의 업적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가정을 가지고 다시금 저자가 정리해놓은 사항들을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일단 그 사례 자체들(저자가 픽션을 적은 것이 아니라면... 해석의 왜곡의 가능성과 여지는 있다 하더라도)이 너무나 터무니없어서, 저자의 부정적인 시각에 일부분 동감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과학이라는 것과 미신이라는 것(주술? 종교?)의 차이가 모호할 수 있음을 논파하는 저자의 논리에 일견 흔들리게 된다. 다 읽고 나서, 그 어떤 책들을 접했을 때보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자문을 강렬하게 하게되더라.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심령연구학회 라는, 정말 싸구려 호러무비(뭐, 내가 오멘 같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또는 판타지 소설들에서나 나올만한 소재(물론, 닥터후 같은데서는 코믹하게 그려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모임이 있었다는게 아니라, 그런 모임에 진화론의 월리스도 있었고, 노벨상 수상자, 작가, 정치인 들이 다수 있었다는 거... 이건 프리메이슨이 나오는 음모론적 조직도 아니고... 캠브리지 교수였다는 시지윅에 대한 설명부분에 작가가 적어놓은 문구는 다음과 같다. "시지윅은 지식으로서의 과학과 탐구 방법론으로서의 과학을 구분했다. 물질주의에 따르면 우주는 인간 위주의 의미를 갖지 않는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은 과학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지윜은, 해결책은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는 것이며 과학적 방법론으로 물질주의의 오류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이 세계를 탈주술화했다면, 과학만이 세계를 재주술화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것만으로는 연결이 안되겠지만, 어쨌든 그 심령연구학회는 교차통신 이라는 강신술 따라지 실험을 수십년동안 해왔고, 그 분신사바계열의 자기 기술문서들을 분석함으로써, 물질주의의 허점을 밝혀내는 과학적인 연구를 하려 했다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도대체, 이게 뭔 소리란말이냐? 이와 도찐개찐으로 벨푸어라는 정치인은 "과학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과학을 사용했다. ... 하지만 과학에 따르면 인간의 감각은 세상을 잘 헤쳐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다. ... 벨푸어는 우리가 이런 고독에서 벗어나려면 신성한 정신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참...한편, 볼셰비즘 시기의 러시아. 레닌과 스탈린, 그리고 여러 영웅들... 그들이 볼셰비즘을 종교운동으로 인식했다는 가정을 저자는 주장한다. 어머니의 고리키부터 초자연적 현상으로 눈을 돌렸다는 이야기를 아래와 같이 사례를 들어 열거한다. "... 고리키는 평생 텔레파시에 관심이 있었다. 사실, 과학과 주술을 결합한 사람은 고리키만이 아니었다. 우선 유럽을 보면, 논리실증주의라는 극히 합리적인 철학에 영감을 주었던 에른스트 마흐같은 철학자들이 인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와 같은 신비주의자들과 함께 일원론자연맹 에 참여했다. 일원론자연맹 은 독일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이 만든 모임이었다. ... 이 다음에 언급되는 사람들은 히틀러의 부관이었다는 루돌프 헤스, 러시아 신경학자 블라디미르 베흐테레프 ... 등등등 그러다가 이런 문장이 나온다. "트로츠키, 고리키, 루나차르스키, 베흐테레프 모두 자신이 다윈의 후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다윈이 보여 준 세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만약 인간 동물이 우연의 결과물에 불과하다면 인류의 미래 역사 여타 동물 종과 마찬가지로 멸종일테니 말이다. .... 라마르크가 언급되고... 자신 역시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스탈린과 함께) 리센코(!!!!)는 인류를 재창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의 생각을 약간 임의로 확대를 하자면, 나찌즘부터 볼셰비즘, 그리고 그런 사상의 광기의 이면이라고 생각했던 인종학살과 인류개조의 발작은, 단순 발작이 아니라 주요 인물들이 가지고 있던 왜곡된 과학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리센코도 단지 체제경쟁에 휩싸인 일부 정치인들의 왜곡된 일탈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의적인 과학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다.... 뭐 이런 식이다. 선한 레닌, 나쁜 스탈린이란 조야한 구도의 사고에 은연중에 젖어있던 나에게, 레닌의 인간개조 취향에 대한 기술이나, 왜 레닌의 시신을 방부처리해서 보관하려했는지, 그 시대정신을 빗대어 설명하는 부분에서 참, 어쨌던 인류의 위대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현실사회주의 실험의 사상적 허점이 참으로 어처구니 없음을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는 말한다,"과학과 주술은 많은 점에서 다르지만 접점이 있다. 둘 다 세상이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과학자의 목적은 실증적인 지식이다.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따름으로써 자연을 지배할 힘을 얻는다. 주술사의 목적은 비밀스런 지식을 얻어서 그것을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 하지만 왜 세계가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혹은 이런 법칙들을 인간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이 불가지론적 논리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 정말 주술과 과학의 본질적인 차이란 무엇인가? 없나?역자가 정리한 다음의 문단이 저자의 부정적인 접근을 그나마 객관적으로 완화하여 설명하는 듯 하다. "... 그들이 생각한 해결책은 과학이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법칙을 발견하는 것이라는 생각, 그 자연법칙에는 진보가 포함된다는 생각, 그리고 과학 탐구의 방법론이나 과학으로 개발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가 아직은 덜 발달했지만 그 발전의 완성이 임박 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 위에 어떤 과학적인 방법론과 기술을 적용했든 간에, 이 세가지 전제는 의심이나 검증이 허용되지 않는 믿음이었다." 그러면서 다시금 과학의 특징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교과서적으로 스스로 던져봤고, 1. 재현가능성, 2. 검증을 위한 투명한 합의... 이 두 개를 꼽아봤다. 사실, 재현이 되었는지 여부에서부터 합의가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에, 이 둘을 엄밀히 분리할 수는 없겠지만, 빅토리아 영국과 볼셰비즘 러시아가 모두 이들에 실패한 것은 다행인 사실인 듯하다. 그들은 영혼의 메시지를 일관되게 기술하는데 실패하였고, 개조된 신인류의 재생산도 물질적으로 이루지 못했고, 그런 실패를 은폐하고 비밀화 했기 때문에 검증이란 것도 전혀 이루어지 못했다. 단순히 말해 잘못된 과학관의 폐해였다고 하겠는데... 다시금 자연의 법칙 이라는 가정에 대해서는 생각해보게 된다. 정말 그런게 있는가? 강한 Yes를 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결국은 투명한 재현의 검증이라는 사회적인 절차로 회귀되는 것은 어쩔수 없다고 보고, ... 어느 심급에서는 참여자들이 가지는 믿음이라는 요소가 배제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주술과 과학의 차이는 무엇이냔 말이다. 허 참...
‘반反휴머니즘의 기수’, ‘우상 파괴자’, ‘철학계의 선동가’,존 그레이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과학의 이면에 있는 거대한 기획을 파헤친다. 전작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에서 서구 계몽주의라는 거대한 유산을 거침없이 비판하며 단숨에 대중 지식인의 반열에 오른 뒤로, 존 그레이는 이 시대 가장 도발적이며 논쟁적인 저자라는 평을 받아 왔다. 그는 이 책에서 다윈의 발견 이후 충격을 받은 이들이 주술적 과학으로 빠져드는 광경을 포착해, 그것의 허상을 밝혀낸다.
이 책에서는 죽음을 거부하려고 비밀리에 교령회 를 행했던 빅토리아시대의 저명 인사들과, 불멸화 기획을 주도한 소비에트의 볼셰비키 지식인 분파의 이야기가 나온다. 영국의 심령주의자들이 과학으로 영혼의 사후 지속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러시아 지식인들은 아예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저자는 여기서 종교와 과학, 그리고 주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점을 발견하고 인간의 부조리를 꼬집는다. 더 나아가 인간은 인간이라는 조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준다.
여는 글: 죽음을 벗어나려 했던 사람들
1장 교차통신, 유령과 나누는 대화
다윈, 교령회에 참석하다 · 「심령연구학회」 설립자 F.W.H. 마이어스, 죽은 뒤에 메시지를 보내기로 윌리엄 제임스와 약속하다 · 자동 기술과 교차 통신 · 자연선택 이론의 공동 발견자인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심령주의자가 되다 · 시지윅의 사후 세계 추구와 윤리학의 블랙홀 · 영혼의 불멸에 대한 다윈의 견해 · 조지 엘리엇, 트리니티 칼리지 정원에서 ‘의무’에 대해 논하다 · 내세의 몇 가지 버전들 · 사후 세계에서의 진화에 대한 마이어스의 견해 · 사후 세계에서 ‘시지윅’이 보낸 메시지, 나는 아직도 추구한다 · 무의식에 대한 두 가지 견해 · 식역하 자아와 체현의 위력 · 헨리 시지윅과 마담 블라바츠키 · 시지윅, 마이어스, 그리고 동성애 · 마이어스와 비밀스런 사랑 · 과학, 신앙, 의심에 대한 아서 밸푸어의 견해 · 오래 전 숨진 연인이 밸푸어에게 메시지를 보내다 · 종려 주일 · 교차 통신: ‘이야기’와 ‘계획’ · 사후 세계의 우생학과 예언자 아기 · 화성에서 온 편지 · 마이어스의 기묘한 뮤즈 ‘클레리아’의 출현과 사라짐 · 식역하 로맨스, 끝이 나다 · 영원한 환생에 대한 우스펜스키의 견해 · 런던을 뒤덮은 화염
2장 건신주의자, 과학으로 죽음을 정복하려 한 사람들
H.G. 웰스, 러시아에서 사랑에 빠지다 · 모라, 막심 고리키의 여인이자 웰스의 ‘그림자 연인’ · 로버트 브루스 록하트와 모라, 그리고 ‘록하트 작전’ · 웰스, 모라의 비밀스런 삶을 알게 되다 · 모라의 웃음 · 꿀 냄새 · 웰스, 다윈, 모로 박사: 소멸하는 존재인 야수들 · ‘다가올 일들의 패턴’ 같은 건 없다 · 막심 고리키, 건신주의자 · 아나톨리 루나차르스키, 신비주의자이자 소비에트 인민 계몽 위원회 위원장 · 신경과학자이자 초심리학자 블라디미르 베흐테레브, 스탈린을 방문한 대가를 치르다 · 라마르크와 리센코 · 백해 운하의 휴머니즘 · 고리키, 쥐와 비슷한 존재는 박멸돼야 한다고 이야기하다 · 불멸과 로켓 과학: 콘스탄틴 치올콥스키 · 스탈린, 거대한 벼룩 · 고리키의 여행 가방 · 고리키의 마지막 말 · 레오니드 크라신: 소비에트 인민위원, 돈 세탁꾼, 그리고 저온학의 개척자 · 니콜라이 페도로프: 러시아 정교 신비주의자이자 기술적 불멸주의자 · 불멸화 위원회 · 카지미르 말레비치: 입체 미래주의 건축가, 레닌 묘의 형태에 영감을 준 사람 · ‘태양에 대한 승리’ · 두 명의 체카 초인 · 스탈린의 커피 기계 · 살인 기계 · 향수, 재, 갓 구운 빵 · 월터 듀런티: 알레이스터 크롤리의 사도이자 스탈린 옹호자 · 메소드 연기법과 모스크바 공개 숙청 재판 · 모라의 모닥불
3장 달콤한 필멸
자동 기술에서 저온 보존까지 ·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몸을 얼리거나 굶기기 · 지구온난화와 필멸하는 지구 · 레이 커즈와일과 특이점 · 인공 지능과 가상 진화 · 불멸주의, 인간 소멸의 프로그램 · 풀 수 없는 문제들을 만들어 내는 과학 · 자연법칙이냐, 태고부터의 혼돈이냐 · 비 · 카사블랑카에서 나는 죽음의 달콤한 향기 · 낙엽의 떨어짐
감사의 글
옮긴이의 글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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